라시엘님의 호족시리즈 마지막입니다.

모두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지식을 알려주신 라시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마지막 글입니다. 오랜만에 전체를 쭈루룩 읽어보는데, 참 길게도 썼네 싶네요. 저야 그냥 쓴다지만 어떻게 다들 읽으시는지. 하하하하;;; 어쨌든, 마지막은 다시 시작으로 돌아갑니다. 이 시리즈의 첫 시작을 유가와 법가의 충돌이란 관점에서 호족-황제 체제의 충돌 과정으로 시작했었죠. 기억나세요? 안 나시겠지만 그랬었어요. 하지만 이건 호족의 사상적 기반, 정치적 현상이 일어나게 된 현상들을 설명하면서 썼던 것인 만큼 조금은 단편적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번 마지막 글은, 이 당시 유학에 아예 초점을 집중하여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진시황의 시절이 끝나고 호족, 황제들의 대립 시대가 도래하면서, 가장 중시되었던 사상은 유학이었습니다. 황제는 법가의 실패에 따라 법가를 더 이상 내세울 수는 없었지만 자신들을 포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가를 이용했고, 호족들 또한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유가를 이용하였습니다. 물론 둘의 의도가 명백히 다른 동상이몽의 시대였지만, 이러나저러나 둘다 유가를 가지고 떠들떠들했으니 유학의 부흥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럼 왜 이토록 유학을 떠들어댔느냐. 법가야 명분을 잃었다지만 한고조 유방이 초기에 들고 나왔던 도가도 있고 묵가도 있고 종횡가도 있고 병가도 있고 제자백가가 괜한 소리가 아니듯 다들 말만 죽어라 떠들어대서 이 소리도 있고 저 소리도 있는데 왜 하필 유가였느냐.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지배 질서가 확실한 사상이기 때문이죠. 법가의 지배 질서는 실패로 돌아가서 더 이상 얘기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묵가 스타일은 지배층에게 내키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될 대로 되라 하는 식의 도가는 그래도 수용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죠. 국가 체제가 정비되는 과정에서 도가는 확고한 정치 철학이 없는 학파였던 만큼 점차 소강 상태로 접어들고, 가장 지배층의 입맛에 맞는 유가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유학의 가장 큰 특징은 체계적인 통치 기술의 제공입니다. 유학의 논리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군사부일체로 압축됩니다. 황제는 곧 아비요, 백성은 곧 아들이니 가정에서 아비를 자식이 섬기고 아비가 집을 다스리는 것처럼 다스려라. 이게 유가의 정수의 정수의 정수만 빼서 군더더기 다 털어버리고 나오는 얘기입니다. 소위 온정적 가부장제라고도 불리는 부분인데요. 이처럼 유가는 군민의 관계를 정합적으로 설명, 정당성과 정통성의 근거를 마련해주는 좋~은 학문이었습니다. 당연히 황제의 구미에는 맞을 수밖에 없겠죠? 근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로 사대부입니다.

 

본래 황제라는 체제가 발생한 것은 법가 사상에서였습니다. 법가 사상에서의 황제의 위치는 이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천하를 차지하고도 자기 뜻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천하를 질곡으로 삼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말해서 본래의 황제는 말 그대로 마이페이스, 지맘대로 지꼴리는대로 하는 것이 곧 황제였습니다. 법가는 군주의 독점적 지위와 권력 행사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법가 질서 하에서의 황제는 자신의 지위와 위엄에 의해 천하를 다스리는 자였습니다. '법'가라고 해서 현대 성문법을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법가에서의 법은 곧 판례법이요, 판례란 곧 황제가 말하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유가에서의 황제는 어떨까요. 유가에서의 황제는 곧 "존현의 체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질고 학덕이 높은 이에 대한 존경심으로 그의 지배를 인정하는 구조입니다. 근데 안 어진 사람이 황제랍시고 나서면? 역성혁명이 괜히 있겠습니까.

 

즉 유가는 황제의 절대적 존재를 부정합니다. 법가가 안 되니 울며 겨자먹기로 쓰긴 써야겠는데, 처음부터 삐그덩 노선 타는 거죠.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앞에서 살짝 언급했던 사대부의 문제입니다. 유가의 질서는 군-민의 이중 구조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군과 민 사이 신, 즉 사대부라는 새로운 계급층을 상정합니다. 여기서의 사대부는 황제와 인민을 매개하며 그 중간 단계에 있는 또 하나의 통치자를 가리킵니다. 유학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란 황제-사대부-인민의 3개 계급이 군주를 정점으로 모든 이들이 사회적으로 할당된 자신의 직분에 소속되어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를 말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통치자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에 있습니다. 아니, 이 문제는 그 이상입니다. 유가 질서에서의 황제는 우주적 원리, 현명하고 어진 이로서의 체현자이며, 실질적인 국가의 치자 역은 사대부가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황제와 사대부는 긴긴 시간 동안 싸워왔고, 그래서 전 그 내용을 같이 공유하고자 긴긴 글을 써왔습니다. 그리고 그 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을 계속 괴롭혀왔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좀 더 재미있는 현상이 시작됩니다. 바로 기존 유학에 대한 거부 현상입니다.

 

사실 유학이 사회의 실질적 이데올로기를 장악한 것은 이미 후한 광무제의 등극 이후입니다. 황제는 계속해서 그것을 방어해보려고 하고 그 과정이 후한을 거쳐 삼국 시대 내내 관통하는 과정이었습니다만, 이것은 권력 투쟁 과정에서의 산물이며 그 이전에 사회적 이데올로기는 이미 유학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기보다는 제 개인적인 생각에 따른 것입니다만, 사회 이데올로기의 성향은 상부 -> 하부 -> 상부 조직의 순서로 전파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이데올로기적 시스템은 분명 상부 조직, 정치 권력층이나 엘리트층에서 발생합니다. 현대적 민주주의로 나가기 위한 길을 제시했던 로크, 루소 등의 인물도 상부 조직에 소속되어 있던 이들이었고, 가장 하부 조직인 프롤레타리아층에 주목했던 공산주의조차 그 발안의 시작은 지식인층이었던 칼 마르크스였습니다. 최초의 발생은 지식인, 정치인 등이 주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부 조직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하부 조직의 일원들에 의해 이데올로기는 변형, 제창조됩니다. 그리고 최초 상부 조직층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형태로, 이데올로기는 다시금 상부 조직의 보수적 세력을 위협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투쟁이 일어나고 그 투쟁에서 승리한 이데올로기는 전체 시스템을 장악하게 된다는 것이죠.

 

유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제 정권에서 동중서, 육가 등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유학을 채택하기 시작했던 것이 유학 이데올로기의 시작이었다면, 이것이 하부 조직으로 전파되면서 전체 사회를 바꾸고, 그것이 다시금 상부 조직을 위협하는 상황이 후한대와 삼국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즉 전한대의 구조는 이 중 상부 조직에서 하부 조직으로의 전파 과정이었다면, 후한대와 삼국시대는 하부 조직의 상부 조직에 대한 투쟁 과정이며, 서진 이후의 정권은 상부 조직까지 장악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상부 조직에서의 투쟁 과정에서 유가와 기존 황제 정권의 충돌이 있다는 것은, 동시에 하부 조직에서는 이미 유학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은 동시에 그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이 생길 것이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이미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기 시작한 유가가 상부 보수 조직과 싸우고 있는 사이, 유가 내에서는 동시에 기존 유학에 대한 반발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특히 기존 유학의 형태가 이러한 판도를 나타나게 한 이유로 지적됩니다. 기존 유학은 기본적으로 잔구학이라 하여 구절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경학 성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존의 유학은 그 당시 지식인들이 집중했던 두 가지 측면 중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개혁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완전한 실무 중심, 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의 요구에 대해서는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는 경학 중심의 유학이 의미를 가질 수 없었고, 일류 사대부를 중심으로 하여 좀 더 고상한, 세상의 원리 등을 파악하기 위한 형이상학적 요구에 대해서도 역시 기존 어구에만 집중하는 형태가 의미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한말삼초를 기점으로 이에 대한 반발과 새로운 학문에 대한 추구 경향이 일어났고, 그 반발의 유형은 저 두가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법가, 맹정으로의 회귀입니다. 즉 혼란스러운 정국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유학으로는 불가능하고, 이미 그것을 종식시켰던 예시를 보여주는 법가적 방식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가, 법술적 방식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조조였으며, 그러한 방식에 수많은 이들이 동조했던 것도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풍조입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방식을 필요로 하다 생각했고 그렇기에 조조에게 동조했던 상당수의 이들이, 여전히 대부분의 경우 유학자라는 신분은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조조는 정말 이례적인 인물이었고, 그 외의 인물들 중 상당수는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 즉 법가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관점과 신분적으로, 또는 기존의 교육 속에서 유가의 방식으로 교육받아왔던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습들을 보입니다. 순욱, 최염 등이 그러했고 정말 법술적 성향이 매우 강했던 유엽조차 그 혈통적 문제 때문에 그러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갈량 또한 이러한 경우의 하나였다고 봅니다. 이것이 삼국 시대 전체를 통틀어 일어나는 숱한 정치적 현상들을 만들어낸 이유였습니다. 사족으로 한마디 더하자면 곽가가 조조와 그토록 잘 맞았던 것은 곽가가 기존 유가적 입장에서 가장 탈피해 있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곽가가 살아있었다면 그를 중심으로 법가적 성향의 파벌을 형성할 수 있었을 테고, 호족 세력들과 대립하고 있었던 조조의 가장 강한 원군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조조의 개혁이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곽가의 죽음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근데 오늘 할 얘기의 중심은 이쪽은 아니고요.

 

두번째로 현학입니다. 주인공 등장하는 건 원래 초반이어야 하는데요. 베스트셀러는 글러먹었네요.

 

현학적이라는 말을 한번쯤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쓸데없이 어렵게 말한다, 뭐 이런 뜻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결코 좋은 의미의 말로 나오는 말은 아닙니다. 실제 이 시기의 현학에 대해서도 비판의 여론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유학의 전통이란 측면에서 봤을 때, 그리고 동아시아 사상사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현학은 정말 매우 엄청나게 지독히도 중요한 사상적 흐름이었습니다. 부사 참 많네요.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에요.

 

그렇다면 현학이란 뭘까요. 현학이란 삼현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을 말합니다. 삼현이란 노자, 장자, 주역을 말하는데요. 현이 어질 현이 아니라 검을 현입니다. 왜 저렇게 부르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둠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까요. 어쨌든 저 삼현을 읽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학문이 곧 삼현입니다.

 

공자가 주창한 유학이 현대사회에 오면서 현실성이 없다느니 구시대적이라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공격당하고 있는데요. 본래 유학은 지나칠 정도로 현실 중심, 실무 중심의 성향을 지닌 학문이었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에 따라 많은 이들이 서양은 현실, 이성 중심적이고 동양은 신비적이고 감성 중심적이라고 인식하시는 경우가 많은데요. 간단하게 말하면 완전하리만치 착각입니다. 오히려 중심을 이루던 사상들을 보면 그 정반대라고 보는 쪽이 맞습니다. 서양 철학의 시작이었던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현실 세계의 우리들이 보기에는 말장난이나 다름없어 보이며, 소크라테스 이후의 학문들 모두가 형이상학적 요소가 매우 강합니다. 반면 동양 쪽은 유가, 법가 등 현실적으로 국가를 어떻게 통치하고 어떻게 안정시킬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학문들이 철학으로 자리잡아왔습니다. 유가는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학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유가는 오히려 새로운 요구에 대해서는 부합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하죠. 시대는 바뀌고 요구는 달라지는데, 현실적인 문제를 얘기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죠. 현실은 이미 변했으니 현실에 대한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며, 이상주의자들에게는 역시나 현실만 이야기하고 있으니 요구가 수용되지 않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이미 설명을 했고요. 두번째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시기 사회는 유학이 보편화되고 그것을 주도하는 사대부 계층이 실질적인 권한을 장악하면서, 한편으로는 호족 사대부들의 귀족화가 진행되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향거리선제와 그 뒤를 잇는 구품관인법은 전형적인 추천제 시스템입니다. 일전에 설명한 대로 호족들은 모두들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었고, 당연히 고급 호족들의 경우 추천받는 게 너무 쉬운 일이 되었습니다. 진짜 심각한 수준의 장애가 있지 않는 한 엔간해서는 관직에 나갈 수 있는 것이죠. 게다가 관직에 나가지 않더라도 지방에 근거를 두고 있는 만큼 먹고 사는 지장이 없습니다.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이라는 걸 혹시 아시나요? 그다지 복잡한 이론은 아니구요. 욕구에는 5단계가 있으며 하위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사람들이 상위 욕구를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내용입니다. 단, 특정 욕구가 충족되어 욕구 단계가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는, 하위 욕구가 다시 충족되지 않는 상태가 되더라도 상위 욕구에 대한 추구 성향이 나타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어쨌든 당시 호족들은 하위 욕구, 이를테면 식욕이나 성욕 등 원초적 욕구에서는 더 이상 걱정이 없습니다. 관직도 나가려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 자연히 귀족들은 현실적인 문제가 점점 구차한 문제가 되고, 이상적인 것에 대한 욕구가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현학입니다.

 

그렇다면 현학이란? 앞에서 말한 대로 삼현을 공부하는 학문입니다. 삼현이란 앞에서 말한 대로 주역, 노자, 장자를 말합니다. 그럼 왜 이걸 공부하는 걸까요. 거기에서 현학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현학은 현실만 추구하는 유학에 대한 반발에서 나왔으니 당연히 현실이 아닌 이상에 집중합니다. 이상이란 뭔가. 현학이 추구하는 것은 본질에 대한, 하늘의 이치, 즉 천리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유학은 현실에만 집중해왔고, 당연히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다루는 경전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역만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답을 던져주고 있었죠. 그럼 대체 어디에서 이러한 내용을 공부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도가의 경전들, 즉 노자와 장자입니다. 현학은 이 세가지를 중심으로 천리와 세계에 대한 관념을 찾고자 했던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본질은 보이는 대상이 아닙니다. 경전에서 나오는 내용도 한계가 있고, 사실 현학이라는 것의 등장 또한 경전에 대한 지나친 집착, 잔구학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했던 만큼 경전에 대한 의존도는 그리 높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볼 수 있는 것도 없고 경전에 대한 의존도도 낮다면, 대체 무엇을 가지고 본질을 논해야 하는 것일까요? 바로 논리입니다. 이 시기 중국에는 인도로부터 불교를 포함한 다양한 학문들이 유입되는 시기였으며, 그 과정에서 논리학 또한 유입되었습니다. 현학은 바로 이 논리학에 방점을 둔, 기존 유학은 물론 향후 유학의 발전 과정에서도 약간은 이례적인 학문이었습니다. 사실 학계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중국어는 언어 자체가 한 글자로 완결성을 지니는 형태로 구성된 만큼, 조사나 접속사 등을 중점으로 전개되는 논리학은 발전하기 어려운 형태였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현학은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관점을 반박할 만한 학문이었습니다.

 

현학의 전개는 그룹 단위의 대화로 이뤄지는데, 최소 3인으로 구성됩니다. 이 대화를 청담이라고 하는데요. 그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주담 : 주제를 정해 끌고 나가는 역할

2. 객담 : 주담과 함게 논리를 같이 토론하며 반박하는 역할

3. 배담 : 토론의 총괄자이자 사회자로 토론의 결과를 사대부 사회에 알리는 역할

 

그럼 청담에서는 대체 무슨 대화를 할까요. 여기서의 주제는 바로 명리 승부입니다. 명, 즉 이름과 리, 즉 실체를 일체화시키는 것이 청담의 주된 내용입니다. 리에 대해 가장 본질을 꿰뚫는 확실한 명제를 만들기 위해 점차 세분화하여 명과 리를 일치화시키는 것이 명리 승부라는 것인데요. 이렇게 말해봐야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실 분들을 위해 개략적인 수준이지만 예시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주담 : "닭은 사람이야"

객담 : "닭에는 깃털이 있는데 사람에겐 깃털이 없잖아"

주담 : "그럼 깃털이 없는 닭은 사람인 거지"

객담 : "닭의 날개랑 사람의 팔은 그 모양이 다르잖아"

주담 : "그럼 깃털 없는 닭은 팔이 날개의 형태로 바뀐 사람인 거지"

객담 : "......." (반박 종료)

배담 : "주담 XX님이 깃털 없는 닭은 팔이 날개의 형태로 바뀐 사람이라는 명제를 완성했습니다"

사대부들 : "와와!"

 

뭐, 설마 이런 명제를 세웠겠냐마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보시면 대충 맞습니다. 근데 사실 제가 현학 쪽에 집중해서 공부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들은 바로는 저 정도 수준의 명제도 많이 만들었다고는 하더이다. 뭐 어쨌건, 이 과정에서 나타난 말이 바로 "명사"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명사란 이러한 대화를 통해 명제를 완성시킨 이, 주담 역할을 수행한 인물을 말하는데요. 이렇게 완성된 명제는 모든 사대부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형성하게 됩니다. 향후 나오는 명제들은 기존의 명제에 의지하게 되는 구조랄까요. 기존의 명제를 근거로 삼아 새로운 명제가 나오고, 그 명제를 통해 새로운 명제가 나오는 식이라는 거죠. 결국 명제를 만든 이, 즉 명사는 사대부 사회의 기준점이자 지배적 역할을 수행하는 이가 됩니다.

 

근데 대체 뭐 땜시 이 인간은 이 재미없는 이야기를 길게길게 떠들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여기서 주목할 것이 사실 주담이 아니라 배담이기 때문입니다.

 

현학의 초기에는 앞에서 설명하는 내용과 마찬가지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기가 지날수록 이러한 분위기는 변해갑니다. 애초에 사대부들은 아무리 권력에 동떨어진 이상, 나쁘게 말하면 헛소리만 하고 있다 하더라도 지배층은 결국 그들입니다. 그들의 대화가 결국 정치와 연결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죠. 이 과정에서 청담은 진짜 명리가 아니라 명사라는 위치를 따내기 위한 설전, 궤변이 난무하는 형태로 변해갔고, 특정한 명사를 중심으로 그 주위의 배담들이 하나의 파당을 형성하는 현상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새로운 풍토가 나타나는데, 바로 인물평의 강화입니다.

 

초기 현학의 움직임을 통해 몇몇 명사들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이들이 사대부의 기준을 만드는 이들로 자리잡으면서 청담에서는 인물평이 새로운 중심 포인트로 등장하게 됩니다. 명사들이 하는 인물평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예전 글에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 내용입니다. 조조가 왜 그토록 허소를 따라다니면서 인물평을 얻고자 했을까요. 인물평을 얻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청담을 중심으로 하는 사대부 사회 내에 편입되었다는 의미, 어떠한 명사가 인물평을 할 정도로 명망이 있고 포텐셜이 있는 인물이라는 의미 등등 다양한 의미를 동시에 가질 수 있을 수 있는 것이죠.

 

 

현학이란 당시 호족사대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불교의 유입과 확산, 도교의 활성화 등 다양한 현상들이 모두 현학이라는 이 기이한 학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의미 또한 큽니다. 현실 중심적이었던 유학이 본질적 요소에 집중하게 된 이 흐름은 이후 송대의 성리학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형성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제외하더라도, 이것이 호족 사대부 사회의 형성과 인물들의 활동 행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합니다. 왜 순욱이 들어오면서 수많은 이들이 조조 군에 줄줄이 유입되었는지, 왜 능력도 없는 허명이라고 불렸던 허정이 그토록 높은 지위까지 올라야 했는지, 사마휘 등의 명사들이 인물 추천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방통이나 공융 등의 인물들이 인물평을 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등이 바로 여기서 모두 도출되기 때문입니다.

 

강하팔준, 죽림칠현 등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대체 이들이 뭘 했느냐 하는 거죠. 하지만 현학이란 대상을 생각해보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그것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이들은 사대부 사회의 내부 속성상에서는 그 정치적인 인물들을 좌우했던 인물들이 그들이었달까요. 단순히 현실에 아무 것도 안 한 것 같아서 그들이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하신다면 전체 그림을 다시 그려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전체 그림에서는 그 무의미해보이는 이들이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호족 사회에 대한 꽤나 긴 글을 완결지으면서 제가 왜 하필 현학이란 주제로 마지막 글을 정했을까요. 바로 그러한 이유입니다.

 

 

예전 어떤 분께서 역사 공부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질문하신 것에 대해 답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야 사학과를 전공했어도 지금은 대학원 고민하다 끝내 때려치고 이제는 반쯤은 취미 삼아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입장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역사에 대해 공부하시는 분들께는 이런 관점을 가지셨으면 한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건을 보실 때 절대 그 사건 자체만 보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작은 점 하나도, 별 의미 없어보이는 것 하나도 그냥 쉽게 지나가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캄의 면도날 이론처럼, 간단한 것이 진리에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라는 것은 분명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굴러가고 있고, 수많은 변수들의 연계와 전환 속에서 사건이란 그 과정에 나타나는 하나의 파편입니다. 어떤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따라서 이 수많은 변수들을 찬찬히 읽어내실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이러하니 이러하다, 라는 간단한 결론으로 도출해내기에는 사회란 충분히 복잡한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역사를 좋아하고 사학을 전공한 만큼 일반인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지식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일단 서양사 전공자인 데다가 한문 독해 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지식에서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단지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비록 부족한 지식이지만 그것을 통해 전체 그림을 그리면서 새로운 관점을 생각해볼 수 있는 법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역사란 것은, 그러한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역사는 뭔가 절대적인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정사에 이렇게 나와 있더라, 자치통감에 이렇게 나와 있더라 하면 그것은 분명한 지식이며 거기에 대해서는 논박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이상의 것입니다. 지식을 왜 쌓을까요. 아는 게 좋아서? 저도 지식 오타쿠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뭐든 간에 지식이 늘어나는 것에 기뻐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 공부의 끝이라면, 그것은 뭔가 허무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진정 역사를 공부하는 의미는, 그를 통해 전체의 그림을 그리는 법을 익혀가는 것이 아닐까요.

 

전체 그림을 그리는 것인 만큼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지식의 부족, 관점의 차이 등등에 따라 사람마다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낼 수도 있습니다. 역사학은 그러한 모든 것을 인정하는 학문입니다. 물론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겠지만, 누구도 옳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수많은 관점과 수많은 그림들을 생각하고 나누고 그를 위해 토론하면서 자신의 관점을 수정해가는 과정, 그를 통해 좀 더 정확히 보는 법을 익혀가는 과정이 곧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 3 때부터 삼국지 카페에서 토론장에 뒹굴거렸으니 인터넷 토론만 얼추 12년을 넘게 했네요. 그 동안 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고, 싸우기도 참 오죽이도 많이 싸웟고, 감정이 올라온 경험도 꽤습니다. 저런 새끼가 왜 설치나 싶으면서 속으로 열불을 삭힌 적도 많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때의 그 각각의 사건들이 감정까지 상해가면서 싸울 문제였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이러한 토론 과정들이 지식을 익혀가는 과정이었고 새로운 관점을 배워가는 과정이었을 뿐인데요. 전체 그림을 그릴 줄 안다고는 하나 저 또한 완벽하지 못하고, 세상 어느 사람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신이 있다면 신은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당연히 완벽할 수 없습니다. 좀 더 겸허하게 남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진다면, 우리의 지식도 관점도 한층 더 성숙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잡설이 길었습니다. 드디어 시리즈 글을 완결하는군요. 새로운 글로 예전에 쓰던 인물론을 계속 써볼까 생각 중이긴 합니다만, 글쎄.... 잘은 모르겠네요. 글 7개 쓰면서 이처럼 오래 걸릴 줄야. 하하하;;

 

그 동안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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