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게임 공략에 사고가생겨.(그놈의 쿠노이치 난이도... 아 시노비부터 찍어야 하는데 게임이 없어요 그 이유 진짜 지금 생각해도 빡도네. 내가 꼬불쳐 둔 돈으로 사는게 죄인가? 내가 사달라고 했어?)

 

쿠노이치를 깨든지 아님 딴 게임을 하든지.... 그냥 돌파라도 해야겠지요.

 

본 호족 시리즈는 삼국지 관련으로 관련 지식 사이트에서 가져온것입니다.

문제시에는 제가 스스로 적정한 처리를 하겠습니다.

 

 

라시엘이라는 분의 작품으로 현재 그분은 이글루 활동 중입니다.

 

 

안녕하세요. 지난번 보정 글을 올렸던 라시엘입니다.

 

일전 글을 올릴 때 호족 관련 글을 한번 올린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혹시나 기억하실까 모르겠네요. 사실 호족이란 개념은 한국사 공부할 때 자주 보셨던 개념이라 중국과, 특히 삼국지와 무슨 상관이냐 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삼국시대를 읽는 가장 중요한 틀 중 하나가 호족이 아닐까 합니다. 호족 체제가 바로 그 시대의 가장 중심이 되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설로서의 삼국지연의에서 인물 중심의 논의도 중요하며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적 구조를 안다면, 그 이해에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네요. 왜 그 인물들이 그렇게 행동하였는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알려주는 것이 바로 구조, 시대적 패러다임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사례 중심의 서술이 많습니다. 또한 1차 사료보다는 2차 사료인 논문 등의 자료를 참조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주로 참조한 책은 홍승현 선생님의 "사대부와 중국 고대 사회"입니다.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아요.

 

가는 길이 좀 많이 길 것 같습니다. 몇편의 시리즈로 나눠서 올리도록 하죠.

 

 

1. 호족의 사상적 기반 : 유가

 

중국 역사는 수많은 사상들의 혼재 속에서 진행됩니다. 춘추전국시대 때 형성되었던 법가, 유가, 도가, 병가, 종횡가, 묵가 등의 사상은 그 시대 뿐 아니라 이후 시대까지 관통하는 중요한 사상들입니다. 또한 인도에서 전파되었던 불교의 사상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배층 구조라는 측면에서 볼 때, 중국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중심 되는 사상은 역시 법가와 유가였습니다. 도가와 불가는 아무래도 종교적 성향이 강하여 민중 중심의 영향력을 주로 행사했고, 병가나 종횡가는 해결 중심적 요소 성향 때문에 특정 분야에 특화되는 경향이 있었지요. 그러나 법가와 유가는 지배층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며, 중국 역사, 특히 위진남북조의 역사는 이 법가와 유가 간의 대립 구도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법가와 유가일까. 이는 중국 지배층을 구성하는 두 요소에서 비롯됩니다. 바로 황제와 신하입니다. ...엄청 뻔해 보이는 지배층 구조인가요. 왕 있고 신하 있고 당연한 소리니까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배층 역사에서 황제와 신하는 동상이몽 상태에 있었고 대립 구도로 점철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황제는 법가를 통한 강력한 일원적 지배 체제를 추구했고, 신하는 유가를 통한 중간자적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간단하게 법가와 유가의 지배 체제를 설명드리겠습니다.

 

흔히들 법가는 법을 중시한다, 현대적 체제와 비슷하다 하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법가에서의 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문제입니다. 아직 성문법적 체제가 자리잡기 이전, 중국에서의 법은 곧 황제의 결정이었습니다. 황제가 결정하면 그것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따라야 한다는 것이 바로 법가의 사상의 요체이자 실상입니다. 물론 법가의 시작을 알렸던 상앙, 한비 등이 법제를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것은 황제의 뜻에 따른 법제였습니다. 이사의 대에 그러한 체제가 완비되었고, 첫 황제 체제였던 진대의 법가는 오직 황제만이 법을 결정하는 절대적 존재로 부각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태에서 신하들의 입장입니다. 법가 지배 체제에서 황제는 절대적 존재인 만큼, 신하는 그 존재 가치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보통 봉건적 지배 구조에서 왕과 민 사이에는 신하, 제후들이 위치하죠. 그러나 법가는 이러한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고자 합니다. 신하들은 오직 황제가 명령한 것을 따라서 행동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비웃는 게 아니라 그것이 원칙입니다. 이 시기의 관리들에 대해 도필리라고, 조각칼 들고 죽간에 새기는 것밖에 모른다고 비웃었던 것은 사실 그래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결정 권한은 오직 군주, 황제에게만 있으며, 관리는 자의적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좋은 체제 아니냐 하지만 신하들은 죽을 맛이죠. 또한 이러한 체제는 엄청난 행정적 비용을 감수해야 합니다.

 

왜냐고요?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죠.

 

황제의 법령에는 상대에게 5cm의 상처를 냈을 시 벌금을 10냥을 내라고 적혀 있다고 합시다. 근데 회계에서, 어떤 노인이 나뭇가지로 상대를 때려 7cm의 상처를 냈습니다.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산해서 14냥을 내라고 해야 할까요?

 

예. 그렇게 판단한 관리는 역모 죄로 사형을 당해야 합니다.

 

읭? 무슨 소리냐고요? 저건 관리가 자의적으로 판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법령에 적혀있지도 않은데 개인적인 판단으로 합니까. 그건 황제의 고유 권한이고 지금 관리는 황제의 권한을 침범한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죠? 간단합니다. 황제한테 물어봐야죠. 그래서 회계에 있는 관리는 장안(함양)에 있는 황제에게 죽간을 보냅니다. 이러이러한 사안이 있는데 어떻게 처리할깝쇼. 말을 열심히 달려 장안까지...... 허허; 어찌 됐건 도착했는데 이미 그런 죽간은 수천개가 쌓여있습니다. 전국을 다 그렇게 통치하니 별 수 있나요. 몇달을 기다려 황제의 결정이 내려지고, 또 말을 열심히 달려 회계로 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판결을 내리려 하는데......

 

어? 그 사이 노인이 늙어 죽었네요.

 

이게 법가의 실상이었습니다. 예전 수업 들을 때 기억으로는, 사료에 진짜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고 기억합니다.

 

 

이 시기의 법률은 성문법의 형식이 아니었습니다. 판례법입니다. 황제가 판단한 예시들을 근거로 그것에 따라 집행하는 판례법이 법가적 법술 정치입니다. 판례법은 미국 예시만 봐도 아시겠지만 꽤나 복잡합니다. 예시를 일일이 뒤져야 하니까요. 그래서 진대의 법률이 복잡했던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융통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판례는 계속 추가되지만 오직 황제의 권한이며, 관리는 결정할 수 없습니다. 법률은 점점 복잡해지지만 관리는 오직 예시만 한참 뒤지다가 황제한테 또 물어봐야 합니다. 점점 더 복잡함은 심해집니다.

 

게다가 관리는 자기 판단조차 할 수 없으니 이 체제가 맘에 들 리가 없습니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자신의 결정권을 늘리길 원합니다. 오직 하나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은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게다가 아무리 황제 이하 제민평등이라지만, 그걸 아무리 추구해도 이 시대의 정치 권력엔 한계가 있으며 민들 간에는 차이, 특히 경제능력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현대 공산주의 사회도 못 이룬 걸 기원전에 하려고 했으니 될 턱이 있나요. 하지만 경제능력 차이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권력을 쥐고 싶죠. 하지만 그건 황제만의 권한이니 그것이 틀렸다고 할 만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유가입니다.

 

 

법가 질서가 뭔지 딱 보이시나요? 유가의 질서는 법가 질서보다 복잡해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더 간단합니다. 유가의 질서는 간단히 말하면 가족 질서를 국가 질서로 확대한 것입니다. 군주는 곧 아버지고 신하는 곧 어머니나 큰형, 큰누나입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은 유가 질서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말입니다. 하지만 가족 사회는 아버지가 결정하고 다 땡인가요? 아닙니다. 아버지는 권위가 있는 존재지만 최종 결정권을 지니고 있을 분이고, 많은 부분에서 구성원들은 자의적 판단이 가능합니다. 군사부일체지만 동시에 부창부수입니다. 여기서의 관리는 그저 민에 불과한 게 아니라 신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되며, 황제의 조력자로 활동하는 근거로 작용합니다.

 

진대의 법률이 복잡해서 유방이 약법삼장으로 바꿨다고 하는데, 이건 참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단순히 법을 정비했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판례법을 세 줄로 적힌 성문법으로 바꾼 겁니다. 법률 쪽 공부하시는 분들은 순간 유방이 미쳤구나 싶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변형은 곧 법가적 질서가 유가적 질서로 넘어가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으론 유방이 그저 멍청해서 법이 복잡하니 이해 못 하겠으니까 그런 걸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것을 그토록 많은 사서들이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그것의 상징성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유가의 사상은 황제 입장에서야 못마땅하겠습니다만, 신하들 입장에선 꽤나 구미에 맞는 부분입니다.

 

 

근데 그럼 신하는 어떻게 구성될까요.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호족입니다.

 

호족이란 간단히 말하면 지방 유지입니다. 이 시기 지방에서 힘 좀 쓴다 하는 조폭들이 곧 호족입니다. 돈도 좀 있겠고 토지도 좀 있겠고 그래서 지방에 대한 영향력도 그럭저럭 있습니다. 게다가 진말한초의 혼란기를 틈타 사병도 길러서 힘도 그럭저럭 있습니다. 진대에는 워낙 강압적으로 누르니 깨갱 하고 있었습니다만, 한 고조 유방의 최초 군국제 체제를 틈타 이들은 각지에 봉해진 제후들 휘하에 들어가며 공신력도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초기 소하, 조참 등 도필리 출신의 법술가들이 지배할 때는 그나마 좀 눌려 있었습니다만, 어차피 그들이 본격적인 법가 체제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초기 전한의 황제가 그럴 만한 힘도 없었기 때문에, 호족의 득세는 점차 커져갑니다.

 

하지만 한무제 시기 호족들은 진시황 때와 마찬가지로 한바탕 꽉 밟혀봅니다. 자신들의 권력 기반이었던 토지는 몽땅 쪼개지고, 한무제의 정책 영향으로 공신력을 주던 제후들이 개박살납니다. 다시금 진시황 때와 같은 법가 정치로 넘어가려는 것이었죠. 다행히 한무제가 죽으면서 보정 체제로 전환되었고, 그를 틈타 호족들은 다시 회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호족들은 자기 반성을 시작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황제 한명 또 강한 놈 나오면 다 밟혀죽는다"

 

그리고 그들은 본격적으로 황제 체제 자체를 뒤엎어가기 시작합니다. 즉 이론적인 측면에서 중무장해서, 황제가 다시금 법가적 정치를 펼치고자 할 때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뒤져보니 유가 사상만큼 그 구미에 딱딱 맞는 게 없는 겁니다. 묵가를 골랐다간 이거 민중이 다 올라서게 생겼고, 도가는 뭐 하라는 건지 알아듣지도 못하겠고요. 병가, 종횡가는 난세에야 효과가 있지만 치세의 지금 이 상황에 전혀 적합성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음양가 같은 쪽은 뭐 신경쓸 여지도 없고요. 그래서 그들은 유가의 지식을 습득하며 황제에 대항할 힘을 축적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호족 사대부의 탄생입니다.

 

지난번 제 보정에 관련된 글에 대략적인 내용이 나오긴 했는데요. 이러한 그들의 체제 강화에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보정입니다. 유가적 입신양명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황제 중심의 체제를 붕괴시키고, 호족들에게 공신력을 부여하면서 황제 권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힘을 기를 여지를 준 것이 바로 보정 체제입니다. 결국 이들의 힘은 점점 커져갔고, 이러한 호족 세력의 대표격이었던 인물 한 명이 호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국가를 전복시키기에 이릅니다. 그것이 바로 왕망의 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위기가 다시 한번 닥치니, 그것이 바로 왕망의 신입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사실 왕망의 왕전제 체제는 호족들 보고 죽으라는 겁니다. 토지 전체를 국유화하겠다 어떻다. 진황과 한무의 시대로 돌아가라는 소리니까요. 이는 왕망이 이상주의였기도 하지만, 동시에 왕망 자신이 호족이었던 만큼 호족을 누를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기엔 너무 준비에 태만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어쨌든 이러한 왕망의 태도는 호족들에게 거의 배신감과 같은 충격이었고, 결국 호족 중 한명이었던 광무제를 중심으로 뒤집어 엎기에 이릅니다.

 

 

광무제는 호족들의 지지로 되었고 호족들 없이 뭘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 만큼, 전한 시기 유가가 지배 이념으로 확립되지는 않고 암묵적으로만 신봉되던 것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보정 체제와 결부되면서 유가는 점점 공고해졌고, 호족 사대부 세력도 점점 공고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 상태에서, 삼국 시대가 개막합니다.

 

 

어쩌다 보니 글이 길어져서 삼국 시대 이야기는 들어가지도 못했네요.

다음 글에선 삼국 시대의 호족과 사건들에 대해서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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